편의점 문턱을 사람보다 먼저 넘던 코 끝, 카운터 안으로 들어와 엉덩이를 붙이던 단골 댕댕이들. 세 마리의 친구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. 반려인으로서, 그리고 사장으로서 나누는 뭉클한 이별 기록.
📍 오늘 나눌 이야기
- 산책의 정거장: 주인보다 먼저 사장님 안부를 묻는 댕댕이들
- 엉덩이의 신뢰: 카운터 안쪽까지 허락된 아주 특별한 유대감
- 예고 없는 이별: "사장님, 우리 애 보냈어요"라는 먹먹한 고백
- 남겨진 시선: 낮은 곳을 훑는 습관과 반려인으로서의 공감
1. 사람보다 코가 먼저 마중 나오는 가게
우리 가게 문턱은 사람보다 먼저 코부터 들이미는 단골들이 점령하곤 한다. 편의점 자동문이 열리면, 정작 물건을 살 견주보다 0.5초 먼저 검은 코끝과 쫑긋한 귀가 불쑥 나타난다.
이 녀석들은 단순히 주인을 따라오는 게 아니다. 문이 열리자마자 카운터 안쪽의 나를 확인한다. 내가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줘야 비로소 안심했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산책의 다음 코스로 발을 뗀다. 어떤 녀석은 내가 보이지 않으면 문턱을 넘지 않고 버틴단다. 녀석들에게 나는 '간식 주는 아저씨' 혹은 '산책길의 통행료 같은 인사'를 나누는 존재인 셈이다.

🐾 사장님의 일기 한 토막
"오늘도 그 녀석이 왔다. 리드줄이 팽팽해질 정도로 앞장서서 오더니,
내가 '어이, 단골!' 하고 부르자마자 꼬리가 헬리콥터처럼 돌아간다. 사람 손님에겐 '알바생' 모드로 딱딱하게 굴다가도, 이 녀석들 앞에선 무장해제되고 만다."
2. 카운터 안쪽을 허락한 엉덩이의 무게
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가던 세 녀석이 있었다. 그 녀석들은 견주가 커피를 고르거나 담배를 사는 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카운터 안쪽, 내 발치 옆으로 성큼성큼 들어온다.
보통 강아지들은 낯선 공간에서 경계하기 마련인데, 이 녀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내 다리에 자기 몸을 기대고는 슥 뒤돌아 앉는다. 짐승이 누군가에게 등을 보이고 엉덩이를 붙여 앉는다는 건, 자기 목숨을 맡길 만큼 신뢰한다는 뜻이다.

이름을 부르며 등을 쓰다듬으면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묵직하고 따뜻한 촉감이 참 좋았다. "아유, 우리 단골 머리 깎았네? 예뻐졌네?" 하고 말을 걸면 녀석은 꼬리로 내 정강이를 툭툭 치며 대답을 대신한다.
그렇게 한참을 내 곁에 앉아 온기를 나누다가 내가 "자, 이제 가야지!" 하면 쿨하게 일어나 문쪽으로 향한다.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묘한 기분이 든다. 쟤들도 예뻐해 주면 저렇게 좋아하고 따르는데...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사람의 진심을 다 알고 있구나 싶어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는 것이다.
3. "사장님, 우리 애 보냈어요"
평화롭던 동네 편의점에 차가운 정적이 찾아온 건 지난해 봄이었다. 산책 줄 없이 혼자 들어오신 견주분. 늘 주인 품에서 킁킁대던 녀석이 안 보여 댕댕이 안부를 물으려는데, 견주분이 먼저 입을 떼셨다.
"사장님, 00이 기억나시죠? 어제 보내고 왔어요. 사장님이 너무 예뻐해 주셔서...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."
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데, 목구멍에 뭔가가 턱 걸린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. 나 역시 집에서 나만 기다리는 토이푸들과 살고 있는 반려인이기에, 그 '보냈다'는 짧은 말 뒤에 숨은 거대한 상실감이 파도처럼 덮쳐왔다. 매일 아침 빈 밥그릇을 보며, 주인을 확인하던 녀석의 빈자리를 보며 얼마나 무너지셨을지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.
뒤이어 다른 두 녀석의 소식도 들려왔다. 동네의 사계절을 함께 산책하던 그 녀석들이 하나 둘씩 무지개다리를 건넜다.

4. 거창한 위로보다 깊은 침묵
나는 그분들에게 대단한 심리학자처럼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. 사실 어떤 말이 그 깊은 상실감을 채울 수 있을까. 그저 "고생 많으셨습니다", "거기선 아프지 않겠네요" 하며 같이 고개를 끄덕인 게 전부였다.
그분들이 굳이 나를 찾아와 이 소식을 전한 건, 아마도 자기 아이를 진심으로 예뻐하고 이름을 불러주던 이 공간의 기억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을 것이다. 내 젖은 눈가를 보며 견주분들은 오히려 작게 미소 지으며 위안을 얻으신 듯했다. 내 아이의 마지막을 기억해 주는 타인이 있다는 것,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말 없는 위로를 주고받았다.
마무리: 여전히 낮은 곳을 먼저 봅니다
이제 편의점 자동문이 열려도 사람보다 먼저 들어오는 코끝은 없다.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문이 열릴 때마다 습관적으로 낮은 곳부터 훑는다. 카운터 안쪽 내 발치는 비어있지만,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꼬리를 치며 엉덩이를 붙여 앉을 것만 같다.
"잘 가라, 예쁜 녀석들아. 너희 덕분에 이 아저씨 마음이 참 따뜻했다."
오늘 퇴근길엔 우리 집 토이푸들 녀석을 더 꽉 안아줘야겠다. 녀석이 주는 온기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, 이 모든 만남이 기적 같은 일임을 다시금 깨닫는다.
💬 사장님들, 여러분의 가게에도 '꼬리 치는 단골'이 있나요?
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묵묵히 곁을 내주던 짐승의 온기가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. 오늘 여러분의 곁을 지키는 소중한 존재들에게 따뜻한 인사 한마디 건네보시는 건 어떨까요? 공감과 댓글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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